[전철현의 山 이야기] 2019년을 보내며...진천 농다리를 걷다

전철현 칼럼니스트 | 기사입력 2019/12/29 [16:29]

[전철현의 山 이야기] 2019년을 보내며...진천 농다리를 걷다

전철현 칼럼니스트 | 입력 : 2019/12/29 [16:29]

[신문고뉴스] 전철현 칼럼니스트 = 2019년 한해를 마감하는 송별 산행...'진천 농다리'를 걸었다. 특히 이날은 금년을 정리는 산행이라 뒷풀이 행사도 있고 해서 가벼운 진천 농다리로 산행지를 정한 것이다.

 

진천 농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었고, 또 건설교통부가 선정한 '가장 아름다운 길 100'으로 선정된 곳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이곳은 지금까지 산객들이 다른 곳을 산행하고 돌아오다 뭔가 2% 아쉬움이 남을 때 잠시 쉬었다가는 코스로 많이 애용되었다.

 

▲ 농다리길의 역사를 전시한 전시관


분명 예전에 나도 그랬다. 하지만 어느덧 '느림의 미학'이 친근하게 와 닿는 나이가 되고 보니 진천 농다리 둘레길은 마음의 평안과 안위를 찾고 싶을 때 와서 그 진가를 맛보는 곳이 되었다.

 

산과 호수 그리고 둘레길의 조화로움...이 길은 실상 유명한 괴산 산막이 옛길보다 번잡스럽지 않고 차분함이 포근하게 감싸는 아주 근사한 둘레길이다

 

특히 초겨울 눈 덮인 오솔길 사이로 언듯언듯 보이는 낡은 낙엽을 옛날 아이들 전통놀이 '사방치기'하듯 밟으며 쉬엄쉬엄 걸을 수 있는 초롱길은 친근한 고향 산책로 같다.

 

물론 초롱길 역시 괴산 산막이 옛길처럼 찾아오는 관광객을 위해 인위적으로 나무데크를 깔아서 관광객의 편의를 도모하는 산책로다. 하지만 그렇다고 괴산 산막이 옛길처럼 인위적인 느낌은 들지 않는다.

 

▲ 강을 막아 물을 가두니 호수 or 저수지가 되어 겨울 산의 정경이 더 운치있다.


호수 or 저수지와 잘 어울리는 고요하고 평화로운 산책로인 초롱길은 이른 아침 아침햇살을 받으며 홀로 산책을 해도 좋고, 고즈넉한 늦가을 오후 햇살이 비추는 오솔길을 가족끼리, 연인끼리 걸어도 좋다.

 

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 적막할 정도로 조용한 산사의 오솔길을 걷는 듯 마음의 여유로움과 편안함을 주는 길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산행기란 보이는 것 위주로 기술될 수밖에 없다. 사실 주의 깊게 관심을 가지지 않고 진천 농다리를 본다면 다듬지 않은 자연석으로 그냥 돌무더기를 엮어서 만든 징검다리와 같다.

 

그러나 진천 농다리는 크고 작은 돌들을 맞물리게 쌓아 서로 눌러주고 지탱해주도록 하여 빈 공간에 석회나 흙을 채워 넣지 않고도 튼튼하게 버틸 수 있도록 한, 옛 선조들의 생활의 지혜가 숨어있는 다리이다.

 

▲ 조상의 지혜가 담긴 진천 농다리 길...     ©전철현

 

농다리는 또 이렇게 돌무더기를 쌓아 만든 길임에도 28개의 수문을 내고 그 위에 큰 돌로 상판을 놓아 거친 물살에도 떠내려가지 않도록 만들었다. 옛 농경사회의 농경문화를 반영한 유적들이 대개 그렇듯 28개의 수문은 별자리 28수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한다.

 

농다리 역사관에는 농사짓는 시기는 음력을 중시했음이 기록되어 있다. 지금도 농촌에서는 음력중시 풍습이 남아있는 것을 볼 때, 이는 <우리문화유적 답사기>를 쓴 유홍준 교수라든가 고대 건축물을 연구하는 건축학도나 역사학도들이 관심을 갖고 찾을 수도 있는 다리가 바로 진천의 농다리이다.

 

그렇다고 진천 농다리가 특정 분야의 전문가들에게만 의미있는 다리가 아니다. 우리 같은 '장삼이사' 일반 산객이나 여행객에게 아주 무의미한 다리만은 아니라는 뜻이다. 진천 농다리를 '아름다운 길 100선 중 하나'로 선정한 데에는 적어도 그럴만한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일반 산객이나 여행객들에게는 진천 농다리를 시작으로 용고개를 넘어 초평 저수지 산책로를 걷는 것만으로도 나름 의미가 있다. 물론 진천 농다리 둘레길도 여느 지역 둘레길처럼 '초롱길'이란 이름을 붙였는데 영화 <서편제>에 나오는 '우리나라 최고의 향토 옛길'만큼 아름답거나 그리 길진 않지만 그래도 걸어볼만한 길이다.

 

▲ 이 출렁다리는 농다리길의 백미...  © 전철현


농다리와 초롱길을 거닐면서 옛사람들의 농다리 관련 전승 설화, (예컨대 고려 개국공신 임희장군이 부친상을 당한 여인이 강을 건너지 못하고 울고 있자 그 지극한 효성에 감동해서 용마를 타고 하룻밤만에 돌을 날라 농다리를 만들어 주었다) 민담을 들려주어도 좋다.

 

'연리목'은 없지만 추운 겨울 눈 덮인 초롱길을 걸으며 '견우직녀' 이야기처럼 연인들이 농다리를 매개로 에둘러 사랑을 고백해도 좋은 길이다. 수많은 설화라든가 민담은 결국 사람들의 사연과 이야기들이 쌓이고 쌓여서 만들어지는 스토리텔링이 아니던가?

 

많은 사람들이 북적이는 도심 속 데이트코스, 혹은 식상한 둘레길이나 트레킹 코스가 내키지 않는 분들이라면 주말임에도 조용하고 한가로운 이곳 진천 농다리와 초롱길을 거닐면서 주말을 즐겨도 좋을 듯하다.

 

더구나 고려시대부터 천년을 넘게 보존되어 있는 이곳, 진천의 농다리는 수많은 전설과 구전되어 내려오는 곳이다. 진천 농다리 둘레길을 걸으면서 자신들만의 스토리 하나를 더 쌓아도 괜찮지 싶다.

 

 

다만, 단순히 진천 농다리만을 보기 위해서라든가 정체불명의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人)'이란 이야기의 근원지를 찾아 이곳 진천을 찾았다면 실망한다. 왜냐하면 진천 농다리가 예전보단 분명 좋아진 것은 사실이지만 진천에는 상대적으로 다른 명승지와는 달리 문화적 콘텐츠가 빈곤하기 때문이다.

 

단지 수많은 전승설화나 민담, 예컨대 '생거진천, 사거용인'등등 고전적 스토리텔링에 의미를 부여해서 이곳을 찾거나, 진천 농다리 둘레길에 아무리 의미부여를 한다손치더라도 이것만으로 진천 농다리 둘레길을 찾게 만드는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 농다리길 안내도를 따라 걷다 보면 여러 설화가 생각난다.  © 전철현


PS: 이밖에 진천을 대표하는 문화적 랜드마크는 농다리 뿐 아니라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人)'이란 정체불명 단어조합으로 많은 사람에게 회자되는 8글자이다.

 

이는 '살아서는 진천이요, 죽어서는 용인'이란 뜻인데, 사실 이 말은 특별히 의미부여할 정도로 깊이 있는 내용은 아니다. 오늘날 '이부망천'이란 말로써 지역감정을 촉발시켜 곤욕을 치룬 정치인처럼 다분히 지역홍보용 스토리텔링적 성격을 띤다고 보면 된다

 

진천은 예로부터 물이 많고 평야가 넓으며, 토지가 비옥하고 풍수피해가 없어 농사가 잘되는 고장인 연유로 인심이 후덕하여 '생거진천'이다는 뜻이 생긴 것 같다. 딱 여기까지가 '생거진천'에 의미부여를 할 수 있는 한계치이다. 또 용인은 산세가 순후하여 사대부가의 유명한 산소가 많다하여 '사거용인'으로 후대에 전승되었는데 마치 심오한 뜻이 있는 것처럼 <생거진천, 사거용인>으로 불리웠다.

 

참고로 진천군에 의하면 '생거진천, 사거용인'과 관련한 스토리텔링, 즉 전설이 몇 개 전해오고 있다. 진천과 용인에 사는 동명이인 '추천석'에 관한 것이다.

 

진천에 사는 추천석은 마음씨가 착하고 농사만 짓는 사람이 저승사자의 실수로 용인의 추천석이 아닌 진천의 추천석을 데려와 다시 돌려보냈다. 그러나 이미 장사를 지낸 연고로 용인의 추천석을 잡아들이고 그 시체에 진천의 추천석의 영혼을 넣어 환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서는 진천에 살고 죽어서는 다시 환생하여 용인에 살았다는 동명이인의 죽음과 환생에 관한 이야기가 진천군에서 이야기하는 대표적인 전설이다이것이 <삼국사기>적 스토리텔링...

 

▲ 나무데크로 걷기 좋도록 만들어진 호수 둘레길을 걷다보면 시간가는 줄 모르게 좋다  © 전철현


 한 가지 <삼국유사>적 스토리텔링은 다르다. 옛날 한 여인이 용인으로 시집을 갔다가 시부모가 돌아가시고 남편 또한 세상을 떠나자 진천으로 재가하게 되었다.

 

진천에서 아들 딸 낳아 살고 있는데, 용인에 살던 자식이 건장하게 자라서 어머니를 찾아 모시고 싶다고 하였다. 진천에 있는 자식들도 어머니를 뺏기고 싶지 않자 용인 자식과 진천 자식 사이에서 싸움이 났다. 그러자 원님이 살아서는 진천에서 거하고 죽어서는 용인에서 거하라는 판결을 내려 주었다는 것이다.

 

결국 진천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 산재한 수많은 전래동화라든지 전설 등에는 보편적으로 우리나라 고대사회의 이델올로기와 문화가 녺아있어서 교훈적 가치라든지 당시 권력자의 전설적 신화 그리고 지배질서에 대한 교육적 효과를 나타내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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