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동 전 TV조선 부장, 미투의혹 벗은 뒤 "내가 '조선에' 당했다"

강종호 기자 | 기사입력 2020/09/01 [16:09]

이진동 전 TV조선 부장, 미투의혹 벗은 뒤 "내가 '조선에' 당했다"

강종호 기자 | 입력 : 2020/09/01 [16:09]

지난 2018년 후배 여기자 성폭행 의혹으로 파면 처분받은 이진동 TV조선 전 사회부장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며 피해자가 재정 신청을 냈지만, 법원에서 기각되었다.

 

 

이 전 부장 성폭행 의혹 사건은 지난 2018년 뉴스타파 보도로 알려졌다. 이 전 부장이 자사 후배 기자를 2015년 성폭행했으며, 이 사실을 피해자 A씨가 2018년 뉴스타파에 제보하므로 알려진 것이다.

 

당시의 사회분위기는 '미투'가 확산세였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이런 사회분위기에서 피해자 A씨는 이 전 부장에게 메시지를 보내 2015년의 일에 대해 공개 사과를 요구했다.

 

이 전 부장은 메시지를 통해 "진심으로 사과한다. ‘씻을 수 없는 상처’가 조금이라도 풀릴 수 있다면 수십 번, 수백 번이라도 사과하고 싶다' 등의 답을 했지만 공개사과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뉴스타파는 이 메시지까지 제보를 받은 뒤 관련내용을 기사화 했으며, 월간조선 문갑식 편집장도 직접 [단독] 타이틀로 보도했다가 삭제하는 등으로 파문확산에 동참했었다.

 

파문이 확산되자 이 전 부장은 자신의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 "성관계가 있었지만, 강압성 여부는 법적으로 따질 문제"라고 말하면서 성폭행 의혹은 부인했다. 

 

하지만 TV조선은 당시 이 전 부장을 파면했고,  A씨는 이 전 부장을 피감독자 간음 혐의로 고소했다. 이후 검찰은 관련 내용 수사에 들어간 뒤 2년 여가 지난 금년 3월 증거불충분으로 이 전 부장을 불기소 처분했다. 그러자 A씨는 즉각 서울고검에 항고했다. 그러나 이 항고도 기각되었다.

 

이에 다시 A씨는 법원에 재정 신청을 했다. 재정 신청이란 범죄 혐의가 있는 사건을 검찰이 불기소 처분했을 경우 법원의 판단을 받을 수 있게 한 제도. 그러나 법원도 A씨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1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31부(부장판사 윤성근)는 지난달 14일 A씨가 신청한 이진동 전 TV조선 사회부장에 대한 피감독자 간음 무혐의 처분에 대한 재정 신청 사건에 대해 "이 사건 기록과 신청인이 제출한 자료들을 종합하면 검사의 불기소 처분은 정당한 것으로 수긍할 수 있다"며 "달리 불기소 처분이 부당하다고 인정될 만한 자료가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기각했다.

 

재정 신청이 기각될 경우 기각 결정이 재판에 영향을 미친 헌법·법률 명령 또는 규칙의 위반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대법원에 즉시항고할 수 있다. 하지만 A씨가 즉시항고를 하지 않아 법원의 기각 결정은 지난달 지난 달 28일 확정되었으며, 이 내용은 1일 알려졌다.

 

그러자 이제 가해자로 지목되어 당시 직장인 TV조선에서 파면처분을 받았던 당사자인 이 전 부장이 "당시의 '미투'는 기획된 것"이라며 자신이 당했다고 주장한 뒤, 일단 직장의 원상복귀를 요구하고 이후 자신의 명예회복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 하겠다고 나섰다.

 

특히 이날 이 전 부장은 자신의 페이스북에서 당시 자신이 미투 가해자가 되어 매장을 당한 이유에 대해, 회사와 우파진영에 미운털이 박혀 '제거된 것'으로 묘사해 관심을 끌었다. 즉 국정농단 의혹 확산 당시인 지난 2016년 박근혜-최서원(개명 전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 당시 최서원 씨가 박근혜 전 대통령 의상 제작을 진두지휘하는  CCTV 영상을 입수, 단독 보도하는 등으로 박근혜 정권 몰락에 앞장섰으며, 그 외 조선미디어그룹 고위관계자 등과의 불화 때문이었을 것으로 묘사한 것이다. 

 

아래는 이진동 전 부장이 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 전문이다.

 

허위 미투와 누명을 벗기까지 2년 5개월의 사투

 

미투 누명을 벗는 데 무려 2년 넘는 시간, 900일 가까이나 걸렸다.

 

치떨리고 모욕적인 세월이었고, 지옥을 걷는 시간이었다. 말로는 평정심을 찾아간다고 했지만, 울화통이 치솟다가도 좌절로 푹 꺼지는 일이 반복되는 하루 하루는 길었다. 그나마 가족과 후배 기자들이 끝까지 믿고 곁을 지켜준 덕분에 지탱할 수 있었다. 

 

시간은 진실을 따라 흐르면서 거짓을 걸러내기 마련인지라 한편으로는 당연한 귀결이라고 생각하지만, ‘미투 올무’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발버둥치지 않을 수 없었다. 

 

누명을 벗으려고 증거를 모으는 과정에서 의외의 인물이 드러났다. 피해자라고 주장했던 A씨의 남자 친구 B씨였다. B씨는 변호사 출신으로 현직 공무원이었다.

 

변호사 활동을 할 수 없는 B씨가 숨어서 부적절하게 개입한 정황들을 지난해 2월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하고 ‘악의적 허위 미투’ 의혹을 제기했다. (지금은 결론이 난 상태여서 당시의 글은 비공개로 전환했음). 그러자 며칠 뒤 두 사람은 A씨를 내세워 고소를 해왔고, 나는 A씨와 B씨를 명예훼손 혐의로 맞고소를 해 검찰 수사가 시작됐다. 관련 보도가 나온지 거의 1년이 다된 시점이었다. 

 

A씨나 B씨 두 사람 중에 한명이 법적 대응을 해오면 수사기관을 통해 진실 규명이 이뤄질 것으로 봤다.

 

A씨를 내가 먼저 고소하는 방법도 있었지만, 당시 분위기에선 진상이 가려지기도 전에 사회적 비난 여론에 나가떨어질 게 뻔했다. 상대방의 고소를 먼저 끌어내야만 했다. 당시는 안희정 전 지사의 항소심 유죄 선고 직후라 사회적으로는 미투 고발 분위기가 압도하던 때였다. 후배들은 이런 상황 때문에 진실과 상관없이 내가 한번 더 큰 상처를 입는 자충수가 될까봐 우려스런 눈길로 봤다. 

 

하지만 수사기관의 사실 관계 조사를 통한 실체 판단 만이 누명을 벗는 유일한 길이었다. 조작된 미투라는 것을 잘 아는 내 입장에선 배수진을 칠 수 밖에 없었다. 

        

사법경찰관 수사, 검찰 조사에 이어 고등검찰청 항고, 법원 재정신청까지 조사 주체가 바뀌어가며 4번을 검증했지만 결과는 네 번 다 똑 같았다. ‘혐의 없음’이었다. A씨의 진술이 계속 번복 추가 변경돼 믿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팩트를 찾고 팩트를 모으는 훈련을 직업적으로 해온 기자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헤쳐 나오기 쉽지 않았을 것이다. 몇 년 전 동선과 기록, 카드 사용 내역, 업무 메신저 기록 등 내 주변을 샅샅이 훑어 증거와 객관적 입증 자료를 하나 하나 제시했다. 내막을 아는 후배 기자들 역시 발 벗고 나서서 자료 수집부터 증언까지 적극 도왔다. 

 

미투 프레임에 빠지면 그 순간부터 사회적으로 매장되고 주위 사람들도 등을 돌리기 때문에,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올무를 벗어나기란 쉽지 않다. 더욱이 당시엔 일단 낙인부터 찍어놓고 “사실이 아니다”고 해명할수록 파렴치범으로 몰아가는 분위기였다. 그 점을 잘 아는 쪽에서 ‘미투 누명’을 씌웠을 것이다. 

 

본질은 그 무렵 국정농단 사건 취재 과정을 다룬 책 <이렇게 시작되었다>를 막 출간한 뒤 빚어진 필화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책 출간에 맞춘 절묘한 시점이었다.

 

책 출간과 책이 주목받게 됨으로써 불이익을 받게 될 세력 또는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미투 사건으로 포장됐다고 본다. 여러 정황을 근거로 배후를 추단하고 있지만 아직은 밝혀진 일이 아니기 때문에 자세한 부분은 차차 언급할 생각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은 조선 측이 나에게 오물을 뒤집어 씌워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미투 올가미를 씌우는데 크게 일조했다는 것이다.

 

2년 5개월 여전 당시 월간조선 편집장 문모씨가 인터넷 사이트에 나를 미투 가해자로 기정사실화하는 내용을 처음 띄웠다. 문씨는 내 항의를 받고서 30여분 만에 기사를 삭제했지만, 가짜 뉴스는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채 1시간이 지나지 않아 내 이름이 인터넷 실검 1위까지 오른 뒤, 하루 종일 상위 랭킹에서 내려오지 않을 정도였다. 조선미디어그룹의 1차 총질이었다. 

 

그리고 오후엔 TV조선 인사가 다른 언론사 기자들에게 친절하게 전화까지 먼저 걸어 미투가 확인된 것처럼 파면 조치했다고 낙인찍었다. 월간조선 보도부터 파면까지, 일사분란했다.

 

내가 “사실이 아니다”고 극구 부인하고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TV조선 측은 진위 여부는 물론 진상 파악 절차 조차 무시했다. 허물을 기화로 ‘닥치고 강제아웃’이었다. 구멍가게에서도 일어날 수 없는, 상식적으로 누가 봐도 이상한 일이었다. ‘파면 조치 홍보’는 확인 사살용 2차 총질이었다. 

 

그로 인해 나는 제대로 된 해명이나 항변 한번 못해보고 불과 몇 시간 만에 고꾸라질 수밖에 없었다. 나를 매장하는 데 총대를 멨던 월간조선 문모씨에게 허위 정보를 흘려준 사람은 TV조선 핵심관계자였다. 조선과 TV조선이 탄핵 국면에서 이탈한 태극기 세력과 수구 보수 독자 및 시청자를 돌려세우기 위해 나는 딱 좋은 제물이었다.

 

기자를 하는 동안 누구라도 억울하다고 찾아오면 후배들에게 떠넘기는 일 없이 거의 대부분 직접 만나 하소연을 들어줬다. 굵직굵직한 특종들을 할 수 있는 단서는 그렇게 만난 사람들에게서 나왔다. 그런데 막상 내가 당해서 공신력 있는 몇몇 언론사 기자들에게 억울함을 토로하고 취재와 검증을 요청했지만, 선뜻 나서질 않았다. 충분히 이해한다면서도 막상 돌아가서는 내부 분위기 때문에 수사 결과가 나오면 그때 보자고 뒷걸음쳤다. 그러니 직접 관련자와 증거, 그리고 배후를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다.

 

처음부터 분명하게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지만 언론은 귀담아 들어주지 않았다. ‘미투 주장’이라는 이유로 저널리즘이 사실 확인과 검증 의무를 방기할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이다. 뒤늦게나마 검찰 수사와 법원의 판단을 통해 바로잡힌 건 다행이지만, 2년 5개월이라는 세월은 너무 길고 많은 걸 앗아갔다. 

 

TV조선엔 파면 직전의 상태, 원상회복을 요구할 방침이다. 나오더라도 내 발로 걸어나오겠다는 것이다. 일부 심각한 명예훼손 보도에 대해서도 법적 대응을 할 방침이다. 뉴스타파의 경우 의도와 상관없이 조선미디어 측 장단에 춤춘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무혐의’ 수사 결과가 나오면 기사 삭제와 정정, 사과 등 적절한 조치를 하기로 해당 기자가 약속을 했기 때문에 일단 지켜볼 작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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